성매매 과정에서 성폭력은 가능하다
–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는 현실
방석집에서 술을 팔면서 성매매를 하는 한 중년 여성은 억울한 목소리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가 있었고 이 부분을 성폭력으로 사건을 진행하고 싶다며 전화 상담을 해왔다. 방석집의 특성상 방안에 둘이 앉아 술을 마시던 중에 손님은 강제로 여성을 제압하고 성기를 삽입했다. 손님은 그 전부터 가게에 자주 오던 단골로, 가게 주인의 친구였고 올 때마다 이 여성이 접대를 했기 때문에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술을 팔면서 매상을 올려야하는 입장에서는 웃으면서 접대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웃음은 불행하게도 성폭력 사건을 성립시킬 때는 늘 여성의 발목을 잡는 방해요소가 된다. 그리고 업주는 둘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 없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우기면서 여성에게 영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라고 협박을 했다.
성매매 과정에서 성폭력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기 싫다는 거부 의사를 밝혀도, SM 플레이는 무섭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말을 해도, 니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건데 왜 싫으냐면서 돈을 줬으니 (구매남이) 사정을 해야 끝나는 이 게임에서 여성들은 어떠한 요구와 선택도 할수 없다. 왜냐면,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의 특성이 술을 마시고, 웃음을 지어야하고, 옷을 벗어야하고, 술을 따라야하고, 몸이 만져지고 성적농담의 도마 위에 올려져야하는 것은 기본이기 때문에 성매매 과정에서 일의 속성은 언어폭력/성추행/성폭력의 그 경계를 늘상 넘나든다. 그리고 그것이 '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문제제기 하기가 쉽지 않다.
구매남의 무릎에 앉아 속옷을 벗고 그 자리에서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술을 따르는 란제리 업소가 있다. 이 업소는 여기까지 플레이를 하고 2차를 원하는 손님에 한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진다. 란제리를 벗고 와이셔츠를 입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의 피해 사례는 많다. 그러나 성추행으로 신고를 원하는 여성에게 그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를 하는 경찰/검찰은 여성이 업소 여성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성매매 사건으로 돌리려고 한다. 성매매 업소 안에서는 성폭력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전제가 이들에게는 있다. 더군다가 공식적으로 2차를 하겠다고 돈을 지불하지 않고 합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성의 몸을 만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업소 여성들이면 언제든 만져도 된다는 남성들의 집단적인 합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는 불행하게도 돈을 받은 순간 여성이 받은 성추행/성폭력의 피해는 순식간에 성매매를 한 행위자가 되어 여성 역시 조사를 받아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현재 재판 진행 중인 유명연예인 사건을 봤을 때도 성폭행으로 고소한 여성은 경찰조사 단계에서 성매매 사건으로 인지되면서 무고죄로 구속되어 재판 중에 있다.
성폭력 사건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항거불능 상태임을 입증해야하는 일은 성매매 과정 안에서는 설명해내기 어려운 모순을 안고 있다. 테이블비를 책임지며 매상을 올려야하는 입장에서 여성들은 웃음을 함께 팔아야한다. 아슬아슬한 순간에서도 웃으면서 거절해야하고, 이 진상들이 깽판을 치지 않도록 살살 달래가면서, 혹은 깽판을 치고 나서도 마무리를 잘해야한다는 업주나 매니저들의 눈치를 받으며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배웅을 하는 경우는 흔하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구매남자들은 여자도 즐겼고 좋아했고 합의한/거래한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한다. 항거불능을 입증할 수 없다. 설혹 항거 불능한 상태인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하더라도 법은 여성에게 되묻는다. 성폭행을 당했으면 왜 나와서 도움을 구하지 않았냐고.. 룸 안에 있는 한패거리 남성 집단 안에서 여성이 도움을 구했을 때 도움을 줄 사람은 있었을까? 이 피해를 업소 사장과 매니저에게 말했다 하더라도 손님관리가 중요한 그들에게는 늘 여성들에게 입을 닫고 넘기라고 한다. 어딜가나 겪는 문제 여기서 묻자 하며 넘어가는 사건들이 허다하다.
돈이 지불되는 순간 성폭력의 요소는 말끔하게 삭제되는 이 현실. 법률 지원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혼란스럽다. 성매매 과정에서 성폭력을 주장하기가 왜 이리도 어려울까. 왜 돈이 거래되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들도 '폭력'이라고 말을 할 수 없고, 부당한 요구도 당연스레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릴까. 그리고 남자들은 성폭력보다는 기꺼이 성매매로 고소되는 쪽을 선택한다. 남자들에게는 걸려도 상관없는, 한번쯤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되어버린다. 그리고 액땜했네 하면서 재수없게 걸렸음을 탓하면 된다.
유명연예인 사건은 실제 성매매 여성들의 법률 지원을 하는 현장단체에서는 타격을 받는다.
여러 증거와 정황과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는 명백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의 피해는 사라지고 성매매 행위자로 여성들이 조사받게 될 때 여성들은 많은 심리적인 타격을 입는다. 성폭력의 피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성매매 사건으로 전환되어 여성들 역시 유죄가 될수 있는 가능성을 감수해야하는 것이다. 이는 피해를 받은 여성들을 심리적으로 위축하게 만들고, 이를 지켜보는 활동가들에게도 원치 않은 방향으로 수사가 틀어지는 사례들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면서 남성들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지는게 아닐까.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 7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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