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하고 유쾌한 공동체와 만남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7
베델의 집, 그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공동체
비마이너의 광인일기에서 기획연재 한 「‘약함의 연대’를 위하여 - 일본의 ‘우라카와 베델의 집’을 중심으로」 시리즈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연재한 필자가 워낙 글을 맛깔나게 쓴 공이 크지만 그녀가 다룬 일본의 정신장애인 공동체에 전부터 매료되어 있던 탓도 있었을 게다.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은 일본에서 제일 추운 곳,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의 작은 어촌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름만 들으면 마치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시설 정도로 여겨지는 이곳을 최근 다녀왔다.
‘베델의 집’은 1978년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 시 적십자병원에 근무하던 사회복지사 무카이야치 씨가 낡은 교회 건물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라카와 적십자병원의 정신과를 거친 이들 가운데 주로 조현병인 사람들이 하나 둘 낡은 교회로 모이면서 출발한 ‘베델의 집’은 최소한의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 자신만의 장점과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정신장애인 스스로 회복에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모든 것은 회의를 통해 결정하며 자활훈련이나 직업훈련까지 고려하여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지역사회 내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고, 도전의 수단으로서 장사나 작업 및 각종 활동을 통해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참여를 도모한다.
이곳의 철학과 가치는 실로 기상천외하다. ‘고생을 되찾자’, ‘환청에서 환청씨로’, ‘편견‧차별 대환영’, ‘세끼 밥보다 회의가 좋아’, ‘아래로 내려가는 삶’, ‘자신의 병을 자랑하기’, ‘이익이 나지 않은 것을 소중하게’, ‘안심하고 땡땡이 칠 수 있는 회사’, ‘약함을 유대로’ 등. 베델의 집은 197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당사자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결정하고 체득하면서 나온 캐치프레이즈들을 내걸고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곳이 얼마나 스펙타클한 곳인지는 그간의 수많은 연구물, 화려한 수상경력, 책과 영화들, 베델의 집을 다녀가는 사람들(연간 3500명 정도라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베델사람들이 증명하고 있다.
12시간을 달려 만나러 가다
나의 경우는 2년 전 우연히 베델의 집에 관한 책 한 권을 손에 집어든 게 시작이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이자 지금의 ‘복지숍 베델’ 이사장인 사사키 씨가 쓴 책을 읽고는 그곳 특유의 독특하면서 위트 넘치는 철학과 유쾌한 사람들에게 속된 말로 ‘꽂힌’ 것이다. 한국에서도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고, 무턱대고 당사자 활동가 한 명을 수소문해 연락을 했다.
“혹시 법률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함께 할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물론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고, 그 뒤로도 몇 차례 연락을 하고 찾아간다고 하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비단 정신장애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가 특히나 쉽지 않은 당사자에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얼마나 실례되는 짓을 했단 말인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그 후 어찌어찌 정신장애계에 발을 담그고 1년 남짓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사자활동가와도 지금은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2016년 1월, 드디어 내 활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베델의 집’에 갈 기회가 생겼다. 현재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귀시설 종사자, 장애인단체 활동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과 제자들), 변호사들까지 총 16명이 모였다. 1년에도 베델의 집을 몇 차례나 드나들어 이제 형제와 다름없는 청주정신건강센터장님이 연수일정을 짜고 우리를 인솔해 주셨다. 짧은 연수일정이었지만 베델의 집의 창립멤버인 사회복지사 무카이야치 씨, 정신과 의사 카와무라 씨, ‘우라카와 베델의 집(사회복지법인)’의 대표 하야사카 씨, ‘복지숍 베델(유한회사)’의 이사장 사사키 씨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흥분감이 일었다. 아침 6시에 인천공항에 집합해 출발하는데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베델의 집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공항에서도 버스로 4시간을 달려야 하는 외진 마을이라, 앞으로라도 여행하는 김에 들러볼까라는 야무진 생각은 접기로 했다.
자신의 병을 숨기려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이는 없었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오후 너댓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여섯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베델의 집에서 운영하는'ぶらぶら(어슬렁어슬렁)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과 영화에서 봤던 사람들이 나와 반겨주었다. 이미 사람들의 방문에 익숙해진 이들의 표정에 낯섦이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베델의 집 측이 준비한 환영교류회와 저녁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베델의 집을 개관하는 자료는 무려 ’한글‘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베델의 집 1층 작업장에서 베를 짜 목도리 등을 만드는 일을 하는 마코토씨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친구들이 왔을 때 한 마디라도 나누고 싶어서라고 했다. 한글이 잔뜩 쓰여 진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베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한글로 한마디씩 메시지를 받은 듯 했다. 그는 내게 직접 만든 핑크색 목도리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아마도 베델의 집 최고 미인이 분명한 유미코 씨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사진을 찍자고 하며 포즈를 취했다. 만나자마자 자신의 증상에 대해 알려주면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조언해 준 사에 씨(?)는 몇 번이고 자신의 앞머리가 멋진지를 물어왔다. 마침 그날 생일을 맞은 베델의 집의 왕초 하야사카 씨는 뒤늦게 나타나 빠삐뿌뻬뽀가 될 지경이라면서도(병의 증상이 나타난 것을 두고 그는 빠삐뿌뻬뽀가 됐다고 표현한다) 비행기표 값이 얼만지를 물으며 매년 오라고 했다. 그 안에 자신의 병을 숨기려고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이는 없었다.
활동보조인제도에서 작지만 큰 차이를 보다
왁자지껄하게 저녁을 먹고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겨 무카이야치 씨의 강연이 이어졌다. 변호사들이 3명이나 온다고 하니 일본의 정신장애인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제명부터 시작해 외양은 비슷해 보이나 세부적으로는 다른 점들이 보였다. 활동보조인만 하더라도(일본에서는 'ヘルパー(헬퍼)‘라고 한다)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지만 서비스 이용가능기준을 들여다보면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세부적으로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의 경우 문답형식으로 되어있는 활동보조 인정조사표를 당사자가 작성하게 하고 그 점수를 토대로 서비스 이용여부를 결정하는데, 그 인정조사표라는 게 신체장애인 중심으로 되어 있어(주로 동작가능여부) 정신장애인은 실질적으로 중복장애가 아닌 이상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 그에 반해 일본의 경우 인정조사표 내에도 정신적 장애에 맞춘 문항들이 항목별로 존재하고, 당사자가 장애의 특성상 불리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이면 컴퓨터를 통해 계속 문항을 변경하여 조정한다. 이후 조사원이 가정방문하여 당사자의 실태를 살피고, 그 조사원의 점수와 컴퓨터로 조정한 점수 차이가 크면 별도의 위원회를 열어 최종적으로 서비스 이용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이중 삼중의 장치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터라 늦은 밤까지 질문공세를 펼친 우리에게 성의있게 답해주시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메일로 많은 자료를 보내주신 무카이야치 선생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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