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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 피해 청소년, 그들은 두 발을 그리지 않았다

고진달래 2022. 12. 2. 14:32

하늘(가명)이는 메타버스(확장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하다 한 중학생 오빠를 만났다. 그는 게임을 잘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이템도 선물로 줬다. 어느새 오빠는 누구보다 하늘이 마음을 잘 알아주는 특별한 사람이 됐다. 하늘이는 그와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3개월 동안 연락을 이어갔다. 어느날 오빠는 하늘이에게 “사랑한다”다며 신체 사진을 달라고 했다. 오빠와의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웠던 하늘이는 사진을 건냈다. 그러자 오빠는 돌변했다. 학교에 사진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하면서 다른 신체 사진과 영상을 보내라고 했다. 오빠의 성착취가 시작됐다.하늘이를 비롯한 수많은 아동·청소년이 성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를 지원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는 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산갤러리에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두 번째 이야기’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는 성착취를 당한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리고 만든 작품 30여 점을 선보였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만든 작품. 이들은 공통적으로 발을 그리지 않거나 발에는 색을 칠하지 않았다. 박고은 기자

피해 아동·청소년들은 성착취 피해에서 비롯한 아픔을 작품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눈을 감은 아이’를 그린 피해 청소년 ㄱ씨는 성착취 피해자인 아이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그림 속 아이는 바지는 입지 않고, 왼손에는 돈을 쥐었다. 윗옷 곳곳엔 빨간 무늬가 그려져 있다. 상처를 표현한 것이다. ㄱ씨는 작품 설명에서 “상처는 특히 어른들에게 받은 게 많은데, 녹색의 돈으로 상처를 메꾸고 싶지만 메꿔지지 않는다. 코가 없는 건 숨을 못쉬는 답답함에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많은 작품에 공통점이 있었다. ‘발’이 없다는 것. 땅에 발을 디뎌야만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데, 성착취 피해를 입은 뒤 치료 중인 많은 아동·청소년은 공통으로 발을 그리지 않았다. 김동심 십대여성인권센터 심리지원단장은 “각자 작업했는데도 발을 그리지 않거나 발에 색을 칠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불안함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피해 아동·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건 보호자의 믿음이었다. ‘마음의 지도’를 그린 피해 청소년 ㄴ씨는 심리치료 기간 동안 풍경화를 그려왔는데, 마침내 튼튼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두 발’을 그려냈다. 과거 ㄴ씨는 나무를 그릴 때 줄기가 비어 있거나 가지가 꺾인 나무를 그렸다. 3년 가까이 치료를 받은 뒤 그가 완성한 그림은 달랐다. 튼튼한 버팀목을 연상케 하는 나무로 된 두 발이 그림 중심에 자리했다. 남일량 예술심리치료사는 “이 아이의 마음의 지도에는 두 가지 만남이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 하나는 엄마”라며 “믿음을 주고 지지해주는 엄마 덕에 아이가 안정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전시회는 끊이지 않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실태를 알리기 위해 열렸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2020년 5월 개정됐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성착취 수법은 더욱 악랄해졌다”고 했다. 개정된 법률은 성매매 아동·청소년을 처벌 대상이 아니라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는 “법이 바뀌어도 현실이 변화하지 않은 것은 무관심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우리 사회 탓”이라며 “이 전시회로 아동·청소년이 성착취 범죄자의 표적이 되는 동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고 했다.이 전시회는 이달 10일까지 열린다.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