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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청소년 자해 3부작]‘위로’와 ‘위험’ 사이 자해 콘텐츠

고진달래 2022. 12. 1. 10:41

청소년 자해 3부작

‘위로’와 ‘위험’ 사이 자해 콘텐츠

자해 다룬 노래와 웹툰 유행…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규제
창작자·자해 청소년 “사회가 못한 위로 해준다”

 

 
가수 윤오가 지난해 발표한 음반 《1집 김영준》에 수록된 <자해>는 올해 8월 ‘자학(학대) 행위’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됐다. 김진수 기자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많이 아프게 된다 해도 이젠 멈춰야 한다는 걸 더 이상 갈 수는 없다는 걸/ (중략)/ 하늘색 도화지에 붉은 피가 흐르고 아름답던 그림들은 새빨갛게 물들어갑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니가 이해를 해준다 해도 내 흉터는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가수 윤오가 지난해 발표한 음반 《1집 김영준》에 수록된 <자해>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8월21일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됐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밝힌 이유는 ‘자학(학대) 행위’다. 이 노래가 자살과 자학 행위, 그 밖에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미화하거나 조장한다는 뜻이다. 이 노래 말고도 같은 시기 27개의 음반과 음악 파일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됐다.

 

‘자해’ 노래, ‘자학 행위’로 청소년유해매체물 규제

 

 

하지만 청소년기에 살기 위해 자해를 선택한 많은 사람이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입을 모아 말했다. “노래로 사회도 어른도 해주지 못한 위로를 받는다.” 자해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노래는 그동안 기다려온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공감과 위로였다. 자해하는 친구를 둔 청소년들에겐 ‘친구의 자해는 아픔을 들어달라는 구조 요청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윤오는 20대 초반께 한 친구가 자해한 흉터를 처음 봤다. 어느 여름날 반팔 옷을 입은 친구의 팔뚝에는 소매가 들릴 때마다 칼로 그은 듯한 상처가 보였다. 자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있지만 자해 흔적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자해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왜 자해했느냐’고 묻는 것도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웠다.

 

친구의 자해는 윤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래 <자해>는 그 친구를 몰랐다면 나오지 않았을 터다. 노래 제목이 처음부터 자해는 아니었다. 가사를 만들고 보니 가사에 붙일 제목이 자해뿐이었다. “자해는 스스로 감정을 끊어내거나 어떤 이유로든 감정이 끊어질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봤다. 가사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감정을 끊어낼 때 아픔이 자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윤오는 <한겨레21>에 말했다.


<자해>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바뀐 날, 한 음원 누리집에 자신을 청소년이라고 밝힌 이가 댓글을 달았다. “자해를 자주 해 많이 공감했던 노래다. 그런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바뀌어 앞으로 못 듣게 됐다.” 윤오는 지난해 1집 음반을 발표할 때 이 노래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신청했다. ‘자해’라는 단어나 ‘그어야 한다’는 표현이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그랬다. 정작 당시에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않았다. 이후 포크 그룹 ‘교문앞병아리’의 노래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대·박·자)가 초등학생 사이에 유행하며 논란이 일자,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뒤늦게 윤오의 곡을 포함해 자해를 다룬 노래 28곡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정했다. 노래는 자학 행위로 규제되지만, 만화(간행물윤리위원회)과 방송물(방송통신심의위원회)은 그나마 세부적인 규제 기준도 없는 상황이다.

 

윤오는 “청소년이 영향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학 행위’라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 사유는 이해가 안 된다. 이 노래를 듣고 자해하기보다는 위로 정도를 받지 않을까 싶어서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잘못됐다. 단순히 자해를 다룬 콘텐츠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어떤 청소년이 이런 노래에 공감하는지, 왜 자해를 하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윤오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고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다. 다만 노랫말은 이별을 당한 사람이 아니라 이별을 먼저 말한 사람의 입장에서 썼다. “헤어진 여자친구도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말하는 입장이었다. 어쩌면 감정을 끊어내는 게 통보를 받은 사람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를 ‘자학 행위’라고 해석했다. 당혹스럽다. 노랫말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의미가 천차만별이다.”

 

자해 청소년 “이별 노래 공감하듯, 자해 노래로 위로”

 

자해하는 18살 여학생 ㄱ양은 ‘자해 노래를 들으면 자해를 따라 할 수도 있다’는 어른들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어른들이 헤어질 때 이별을 다룬 노래를 들으며 공감하듯, 자해하거나 자해를 고민했던 청소년은 자해 노래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ㄱ양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자해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언니 오빠가 ‘고등학교에 가면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줘 동생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닦아줬다. ㄱ양은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불안하고 무서웠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결국 따돌림을 당했다.

 

혼자 남은 ㄱ양은 교실에서,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리고 자해했다. 그러고 나면 불안과 걱정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명상이나 운동도 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렵사리 친해진 친구들과 엄마 아빠에게 자해한다고 말하면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워 숨겼다. 우울증이 심해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던 어느 날 가수 빈첸의 노랫말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들과 ㄱ양의 친구들은 ‘빈첸이 관심받고 싶어 자해를 노래한다’고 했다. 하지만 ㄱ양은 “세상에 손 내밀 수 없고, 아무도 잡아주지 않던 손을 가수 빈첸이 노래로 잡아줬다. 나처럼 아파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저기 빈첸 쟤는 거 뭐가 힘들다고 전부 컨셉이지 벗겨봐야 돼/ 그렇게 말한 니가 해명할래?/ 내 오른팔에 대해” 빈첸이 발표한 <전혀>라는 노랫말이다. ㄱ양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자해를 계속하는지 몰랐다. 가정불화도 없었다.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손찌검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평범했다. ㄱ양도 우울증이 심해지는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ㄱ양 팔의 흔적들은 말하고 있었다. ‘넌 힘들다’고.

 

“난 불행해도 가족들은 웃게 해줘야지”라는 노랫말은 ㄱ양의 얘기였다. ㄱ양은 팔을 긋고 울다가도 가족이 부르면 감정을 추슬러 웃으면서 답했다. “유행 따라 자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자해했다는 것은 자신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이다.” ㄱ양에게는 자해를 소재로 노래하는 가수들의 심정도 비슷하게 봤다. “살려고 팔을 그었을 것이고 그런 감정을 녹여 노래를 만들었을 거다.”

 

 

빈첸 노래, 어른들은 “겉멋 들었다” 치부하지만…

 

웹툰 서비스 회사 ‘레진코믹스’ 누리집에서 ‘소망’ 작가가 연재한 웹툰 <자해 클럽>의 장면들. 레진코믹스 제공

 

올해 자해를 시작한 16살 ㄴ양은 ‘자해하는 것을 들키면 가수 빈첸 따라 한다고 욕먹을까?’라고 스스로 묻는다. “어른들은 철없는 청소년이 자해를 따라 한다고만 본다. 하지만 일부 또는 많은 청소년이 우울감을 느낀다. SNS만 봐도 어른들이 준 상처에 공감하는 친구가 많다. 콘텐츠 유통을 규제하는 식으로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것은 자해하는 친구들을 청소년이라는 틀에 손쉽게 가두는 행위다.”

 

ㄴ양은 가수 우원재의 노래 <또>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외로워진 걸까/ 혼자 내린 결론이 정답이 될 순 없을까”라는 노랫말에 공감했다. 빈첸의 노래 <마른 논에 물 대기>에서도 “난 둘의 어릴 적을 뭉쳐서 검은색을 넣고 붉은색을 조금 넣어/ 근데 아빤 왜 그랬어/ 근데 엄만 왜 그랬어”에 위로받았다. 이런 노래를 듣는다고 자해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ㄴ양은 “공감대를 이룬 친구들끼리 위로하면서 절벽에서 손 하나 정도 잡아줄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ㄴ양은 엄마 아빠와 진로 때문에 다투다가 충동적으로 자해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살면서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뛰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해하지 않으려 깊은 잠을 잤지만 효과는 없었다. 죽으려고 자해했다가 나중엔 살려고 자해했다. 정신병원에도 갔지만 “사춘기여서 그렇다”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얘기만 들었다. 어른들도 알아주지 못한 그를 노래들이 이해해줬다. 하지만 어른들은 “겉멋이 들었다”고 했다.

 

자해를 다룬 콘텐츠는 자해를 몰랐던 청소년과 어른에게도 자해하는 사람의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게 했다. 28살 여성 ㄷ씨는 20대 초반에 한 친구가 자해한 흔적을 처음 봤다. “무슨 일 있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내심 ‘관심받고 싶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가 어떤 심정으로 자해했을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후 ㄷ씨는 웹툰 서비스 회사 ‘레진코믹스’ 누리집에서 ‘소망’(예명) 작가가 연재한 <자해 클럽>을 보고 나서 자신이 상처 줬을 그 친구를 떠올렸다. “여전히 자해한 사람을 본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무조건 자해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겠다.” 이제 ㄷ씨는 자해가 이들에게 생존 수단일지 모른다고 짐작한다.

 

 

관심 갖고 보고 들으면 ‘자해 이해’ 계기로

 

시각문화 비평가 ‘리타’(28·본명 이연숙)는 <자해 클럽>의 소망 작가가 이 만화를 구상할 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리타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불화가 심해지면서 자해를 시작했다. 자해는 25살까지 이어졌다. 보통 성인이 되면 자해를 하지 않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랐다. 실제 <자해 클럽>이 웹툰으로 나온 뒤 리타는 “매일매일 죽음과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게 견디고 있었는지”라는 대사에서 10대 때 자기 모습을 봤다.

 

<자해 클럽>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의 자해 자국을 처음 본 같은 반 친구들은 복도를 걸으며 “솔직히 무섭다…” “그런 상처 처음 봤어”라고 말한다. 리타는 “청소년기는 자신에게 민감한 시기다.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크다. 친구가 자해한 사실을 알게 됐더라도 이를 신경 쓸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너 정말 자해해?’ 물으며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려는 모습은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라고 했다.

 

자해를 다룬 창작물이 많아지면 자해에 대한 인식도 깊어질 수 있다. <자해 클럽>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해하는 한 친구에게 말한다. “이 클럽은 그저 서로를 잠깐 위로하는 것밖에 못해. 그리고 오히려 방해하지. 생각하는 것을, 변하는 것을.” 리타는 “자해에 대한 공감대만 이뤄진다면 단순히 자해를 유행으로만 보는 경향은 줄어들 거다. 이미 자해를 시작한 청소년은 자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창작자에게 아무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콘텐츠가 시작점은 아니다”라고 했다. 리타는 만화비평 전문 웹진 <유어마나>에서 <자해 클럽>에 대해 “자신의 수치를 안고 누군가를 위로한다”고 비평했다. “자해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재미로 자해한다는 말도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당당하지 않고, 당당할 수도 없는 상처를 마주 보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할 수 있는 한 창작자의 책임을 다하되 누군가가 어떤 상황일지, 어떤 마음일지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서로에게 위로가 될 거다.”

 

‘자해 충동’ 부추길 수 있어 규제 목소리도

 

 

다만 자해를 다룬 콘텐츠가 많아질 경우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연예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자살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자해를 다룬 콘텐츠도 청소년에게 비슷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염려다. 자해를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미화하는 콘텐츠 유통을 금지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청소년들이 자해와 관련된 콘텐츠를 거듭 보면 자칫 충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자해를 방조하는 콘텐츠의 유통을 규제하되, 자해하는 청소년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자해를 예방하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조처도 이뤄지고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대학생 서포터즈가 제작한 자해 예방 웹툰 <한동 우체국 이야기>,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자살 예방 웹툰 <내일> 등이 대표적이다. ㄱ양 역시 “<내일>은 자살 바로 앞에 서 있던 내게 많은 위로가 됐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홍보 담당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올해 처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해 사진과 영상을 모니터링해 포털 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자살 유해정보로 신고했다. 자해를 다룬 콘텐츠를 자살 유해정보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자해가 자칫 자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고 사업자가 자살 유해정보를 지워도 다른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어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자해 예방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61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