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기/질적연구: 현상학

유아그림속의 어린이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 -전가일

고진달래 2022. 12. 1. 16:04

                 유아그림속의 어린이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 -전가일

한국보육지원학회지,제 10권 제 6회

Journal of Korean Child Care and Education 2014 Vol. 10. No. 6. pp. 291~311

 

서론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하는 것은 어린이의 어떠한 존재성 때문일까?

 

아동기가 인간의 독특하고 고유한 기간이라는 믿음은 근대에 나타난 것으로 이러한 근대적인 시선에서의 어린이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에 따라 대상화된 아동으로 객체화된 타자이고, 보편적인 아동이다(유혜령,2012; cannella 2002)

 

Cannella(2002)는 19세기와 20세기의 실증주의적 가정이 아이들에 관한 담론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면서 실증주의적 담론은 아동기의 성인과는 다른 실재하는 특징이 있는 특정시기로, '순진무구'하고 무엇인가 성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가정한다 그러나 과연 이와 같은 어린이의 존재론에 대한 학문적 담론과 사회 인습적 이해가 어린아이의 존재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것일까? 혹 이러한 어린이의 존재성에 대한 전제들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자연스러운 이해" 라기보다 성인이 어린이는 어떠해야한다는 선험적으로 규정한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Heidegger(1998)는 인간이 모든 존재자들 중에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간을 현존재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속성을 고찰하는 것은 결국 존재의 속성을 밝히는 존재론임을 역설하고 있다. 어린이 또한 성인과 마찬가지인 현존재이므로 우리는 어린이의 존재론적 특징에 대한 이해 즉 어린이에 대한 존재론을 통해 어린이를 이해할수 있다.

 

어린이의 생활세계의 한 부분을 고찰함으로써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많은 질적연구들은 결국 어린이 존재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존재론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을 위해 보다 직접적으로 어린이의 존재적 속성을 살필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한 자료의 하나로 유아 그림책을 생각해볼수 있다( 293p). 좋은 유아그림책은 어린이의 존재 특징을 이해할수 있는 자유변경 방식의 하나가 될수 있다.  좋은 유아 그림책을 고찰하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를 넓힐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자유변경free variation: 현상학에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그 대상의 구성요소를 가진 다양한 대상을 임의로 자유롭게 변경해봄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과정이다(이남인,2014). 예를 들어 이 연구의 초점인 어린이의 존재 속성이 찾고자 하는 본질이라면 어린이의 존재성은 생활사태, 그림, 책, TV광고 등의 다양한 사태와 상황 속에서 드러나므로 우리는 그 다양한 변이variation 들을 파악함으로써 어린이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에 다가설 수 있다.

 

유아 그림책 속의 어린이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 전가일. 299p

연구결과

 

동화책 4권 분석: 존 버닝햄의 <알도>,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상자>, 백희나의 <장수탕 선녀님>, 피터 시스의 <마들렌카의 개>

 

 

1. 알도의 어린이:  피투이며 기투하는 중층적 존재

 

-주어진 상처로 움츠러들었지만 동시에 강인함을 가진 이러한 존재의 중층적인 이미지는 그림책 <알도> 전반에 걸쳐 표현되어있다.

-아이가 지금 처해있는 세계와 아이가 원하는 세계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황과 세계 속에 외롭게 앉아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계 속에 철저히 내 던져진 어린이의 존재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어찌할수 없이 친구들의 괴롭힘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세계-내 존재이다

-부모님의 불화는 아이가 도무지 어쩌지 못하는 일이다. 아이는 그저 그 일을 고스란히 당해야하는 존재다. 아이는 그 자신이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세계 속에 그야말로 '내 던져져'있다. 이때 아이는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다. 이러한 인간 존재적 특징에 대하여 하이데거는 '세계-내 존재'라고 표현했다.

 

인간 모두는 자신이 선택하지도 만들지도 않은 세계에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피투된 존재라는 것이다.(Heidegger, 1998).

 

-이러한 피투성은 인간 모두의 공통된 존재적 특성이지만 보호와 양육을 "받고"있는 어린이들에겐 더욱 주요한 특성이 된다. 여기서 버닝햄은 어린이도 세계의 일부이며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존재의 피투성과 동시에 인간이 죽음을 내다보고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기투하는 존재임을 역설했다 (301).

-(알도는) 또래 친구들이나 가족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 속에 내던져진 채 살아가는 아이가 자신의 존재적 불안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절대적 친구다. 주인공은 알도라는 상상의 친구를 통해 이러한 절대적 내편을 만듦으로써 세계 속에 내 던져진 자신의 피투성을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알도]의 어린이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현존재로서 세계 속에 피투되었지만 동시에 기투하는 중충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2. <시간상자>의 어린이: 욕심을 버리고 책임지는 존재.

아이들은 이것저것 갖고 싶은 것도, 고려할 것도 너무 많은 어른들처럼 복잡한 계산을 하는 대신 다른 친구들이 했던 것처럼 카메라를 다시 바다로 던졌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가질 수 있는 명예의 욕심을 버리고 한 번도 직접 마주하지 못한, 하지만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종을 넘어 바다 속 비밀로 맺은 소중한 연대가 계속될 수 있도록 하는 요청에 책임을 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전가일, 2014).

 

3. <장수탕 선녀님>의 어린이: 타인의 얼굴에 반응하는 존재.

-양보를 넘어서 오히려 친구가 된 선녀할머니의 바람과 필요를 바라보고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 막연한 타인을 향해 가지고 있는 일반화된 동정심이 아니라 나와 관계가 있는 구체적이며 의미 있는 타자에 대한 주체적인 반응이다.

-인간 간의 상호주체성을 이뤄나가는 주체가 된다.

 

Levinas(1979) 은 인간 간의 상호성은 동등하며 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대칭적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나는 그러한 상처받기 쉽고, 약한 타인을 위한 존재이며 타인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이다.

 

 

-선녀할머니는 얼굴 없는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필요와 아픔을 지니고 그것을 표현한 얼굴로서 지금 덕지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덕지는 비록 어린이지만 그러한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존재를 다하여 선녀할머니에게 요구르트를 마련해준다. 이 반응은 덕지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 놓고 스스로 수동적인 주체가 되었기에 가능하다. 레비나스가 표현한대로 덕지는 "수동성보다 더 수동적인 존재" 가 되어 타인의 필요를 돌보고 있다

 

 

4. <마들렌카의 개>의 어린이: 교육적 반응을 촉구하는 존재.

-어른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는 마들렌카의 간절한 바람이 섞인 아이의 가상에 동참함으로써 마들렌카에게 반응하는 능력으로서의 '책임' (responsibility)을 보이고 있다.

 

responsibility 는 반응하다라는 response와 능력이라는 ability가 결합한 형태다. 이런 맥락에서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적절한 반응을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전가일, 2014b)

 

 

-<마들렌카의 개>에서 동네어른들의 반응은 마들렌카의 상상을 견고히 하는 것이므로 마들렌카로서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청이다. 마들렌카는 마을 어른들에게 상상의 강아지에 대한 반응을 함으로써 자신의 상상의 세계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논의 및 결론

-어린이가 아직 성인의 인지적 신체적 성숙에 이르지 못한 발달하는 존재임에 초점을 두어 연약하며 의존적인 어린이의 존재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이 연구는 인습적 어린이의 존재론과 달리 어린이 역시 성인과 마찬가지로 세계-내 존재로서 피투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세계-에로 자신을 던져 기투하는 중층적인 점을 일깨웠다. 반응자일 뿐 아니라 촉발자로서의 어린이 존재 특징에 주목.

 

Smith(1983)는 어린이에 대한 보다 자연스러운 이해를 위한 <아동의 의미>라는 연구에서 어린이의 의미를 "성인을 책임의 장으로 불러내는 강력하고 끈질긴 목소리" (Smith, 1983: p187) 로 해석하고 있으며, Bollonow(1971) 또한 어린이가 성인에게 끊임없는 인내와 신뢰를 요청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요청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전통적인어린이 이미지를 부족하고 의존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것으로 그린 것과 달리 어린이 존재의 강인함과 너그러움, 이타성을 보여준다

-타인의 얼굴에 반응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수동적인 존재보다 더욱 수동적이 되는 것은 타인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여는 관계맺음이다. (강영안, 2005;서덕희, 2012;Sohostack,2008)

 

이 연구는 유아 그림책에 나타난 어린이의 존재론적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기존이 어린이 존재론이 어린이의 발달적 특징에 초점을 두어 의존적이며 수동적이고, 무엇인가 필요한 존재로서의 어린이를 부각한 것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즉, 그림책 속에 나타난 어린이는 전통적인 어린이 담론과는 달리 중층적 존재이며 반응을 요청하고 책임을 지는 존재로 성인과 같은 존재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때로는 그것을 넘어선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note.

 

1. 전가일 선생님의 질적 논문들은 너무나 빼어나게 뛰어남. 해석의 깊이가 남다름

2. 아동의 피투적 존재, 기투적  존재가 함께 공존하는 중층적 존재: (성매매 여성들 또한) 

3. 기존 발달적 관점에서 아동은 아직 성장하지 않은, 성인이 되지 않은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상정하였지만 이 논문에서는 아동을 성인에게 책임을 요청하는 적극적인 존재: (성매매 여성들 역시 이 사회에 책임을 묻는 적극적인 존재라는 것. 그리고 목소리가  없는 존재가 아닌 거세된 존재.)

4. '스스로 수동적인 존재보다 더욱 수동적이 되는 것'이 타인을 향한 관계맺음의 시도: 이 문장을 곱씹어 볼것.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있는 상담원이 바로 이런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